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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진규 조립식 논술’을 내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신문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에 수천 건의 칼럼을 기고하면서 글쓰기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어떤 날은 신문 전면에 해당하는 칼럼을 몇 편씩 준비하면서 정신적 압박도 강하게 받았다. 신문 1면 분량은 원고지로 평균 60매가 넘어 단시간에 쓰기에는 만만치 않다.

글쓰기 작업도 열심히 수행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양한 글을 평가하는 일도 처리해야 했다. 다양한 영역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쓴 글 10만 건 이상 첨삭했다. 개개인의 전공, 성향, 주제 등에 따라 글의 내용은 달랐지만 저지르는 실수는 비슷했다.

한국 최고의 인재들이 입사하고 싶어 하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수험생들도 자신의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논술문에는 약했다. 한국 사람들은 비판적, 논리적 사고경험이 부족해 논증이나 논거제시에 능숙하지 못한 편이다.

논술은 단순히 논제에 관련된 지식이 아니라 논리적인 주장을 펼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하지만 국내 논술시험 대부분은 주관식 시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연하게 논술수업도 글쓰기보다는 지식을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필자도 매일매일 현장에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논술공부에 매진했다. 국내외에서 발간된 다양한 관련 서적을 읽었고, 첨삭지도를 하면서 학생들과 토론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았다. 수험생들이 조립식 논술을 교재로 공부하면서 염두에 뒀으면 하는 몇 가지 이슈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책 제목을 ‘민진규 조립식 논술’로 정한 것은 논술을 구성하는 문장들을 레고블럭처럼 정교하게 다듬어 반복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레고블럭처럼 잘 정제된 문장과 단락은 논리적으로 단순 조립만 해도 쉽게 좋은 글을 완성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둘째, 논술은 초·중·고·대학에서 매번 새로 배워야 하는 과목이 아니라는 점이다. 배우는 지식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논제는 달라질 수 있지만 논술의 구성은 동일하다. 초중고에서 논술을 잘 익혔으면 대학에서 다시 배울 필요가 없다. 즉 다시 말해서 한번만 체계적으로 학습하면 충분하다.

셋째, 논술실력은 시험에 합격하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직장생활과 더불어 죽을 때까지 활용할 수 있는 기술에 속한다. 공무원이나 화이트칼라는 조직에서 다양한 유형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주요 업무이다. 윗사람이나 의사결정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양질의 보고서를 작성하면 좋은 평가는 자연스럽게 따라 온다.

넷째, 청산유수(靑山流水)로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논리적이며 설득력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어떤 조직이든 후자가 더 좋은 대접을 받게 된다. 논리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상대방을 이해시키는데 유리하다. 반대로 말 잘하는 사람이 논리적인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필자도 다양한 책에서 읽은 지식과 현장에서 체득한 노하우를 기반으로 논술을 가르치고 있어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준다면 절차탁마(切磋琢磨)해 머지않은 장래에 진일보된 책으로 보답할 방침이다.

‘21세기 정보전문가’로 성장하려는 수험생이 좌우명으로 삼을 글귀는 논어에 나오는 ‘學而時習之不亦說乎’이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논술을 쓰겠다는 만용을 버리고 노력하면 독자 여러분의 앞날에 서광이 비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